Friday, December 5, 2014

전설의 겜블러 이태혁 “도박꾼의 리얼 인생 보여주고 싶다”

갬블만화 ‘포커페이스’는 실존 인물인 ‘광기의 갬블러’ 이태혁씨의 삶을 모티브로 도박판의 드라마틱한 베팅, 거친 사나이들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승부세계를 그린 작품이다. ‘포커페이스’의 실제 주인공 이태혁씨와 갬블만화의 진수를 펼쳐 보일 정기영·최명수 두 작가를 만나 ‘포커페이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진정한 고수는 이런 것일까. 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이태혁씨에게서는 승부사의 느낌이 들지 않았다. 승부사라면 으레 연상되는 특유의 광기도, 야수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공을 깊이 속으로 갈무리해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무협지에 등장하는 고수같았다.
“나는 도박꾼입니다.” 이태혁씨는 이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세계적으로 온라인 베팅 시장이 커지고, 유럽권에서는 축구시장을 베팅 업체가 좌우하는 시대가 됐죠. 많은 10∼20대 젊은이들이 프로 갬블러를 선망하고 있지만, 저는 도박에 ‘메이저’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들도 저도 결국은 도박꾼일 뿐입니다.”
이태혁씨는 2004년 영국에서 열린 세계포커대회(RCT BRITISH TOURNAMENT)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카지노계의 유명 인사가 됐다. 2008년에는 월드포커챔피언십(WPC) 아시아대회의 디렉터(경기운영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13세의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 3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혼자 세계를 떠돌며 승부의 삶을 살아온 이태혁씨.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후회한다”라고 했다. 후유증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이씨는 승부세계를 떠난 뒤 “시속 100km로 달리던 차가 갑자기 20km로 서행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씨는 2007년 귀국한 이래 도박사가 아닌 주식 전문가, 작가로 활동 중이다.
처음 자신의 삶을 만화작품화하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거절했다고 한다. “‘올인’, ‘타짜’ 등 도박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봤지만 그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 않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다 마음이 바뀌었다. 이씨는 “오히려 나는 (작품과) 가깝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처럼’이 아니라, ‘영화의 속도’로 살았다”라고 했다. 다만 자신의 이야기가 만화로 제작돼 대중에게 알려진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쑥스러울 뿐”이란다.
이태혁씨는 ‘승부에 강해지는 비결’에 대해 ‘판의 모양을 알고 시작할 것’, ‘기다릴 것’을 꼽았다. 요리를 하기 전 이 요리가 찜인지, 죽인지, 튀김인지 알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 최선을 다한다면 어느 정도를 얻을 수 있는지, 아니면 수비만 할 것인지를 미리 판단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꾸준한 관망’이야말로 승리의 참다운 비결이다. 이기기 위해선 좋은 카드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기다리지 못한다. 그는 “너무나 간단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은 이론”이라고 했다.
이씨는 “‘포커페이스’를 통해 사람들이 내 삶을 동경하는 것도, 반대로 배척하는 것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도박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름답지 않다”라며 “도박이 아름답게 보이는 사람은 도박을 해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가급적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포커페이스’로 독자와 만나게 된 것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 이태혁은 누구?
30대 중반이라는 것 외에 정확한 나이, 출생지 등 신상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미스터리한 인물. 부모와 갈등을 겪다 13세에 가출. 중1 때 타짜로부터 고스톱과 포커를 배움. 중학생 시절 주중엔 포커를 치고 주말엔 경마장을 들락거리며 도박에 심취. 군 제대 후 야쿠자 선배의 권유로 대학 복학을 포기하고 일본행. 파친코 등 슬롯머신게임에 입문. 유럽, 미국, 동남아 등지를 떠돌며 도박활동. 2004년 영국 세계포커대회 우승. 우울증에 걸려 3년간 태국 외곽지역에서 은둔. 2007년 귀국. SBS ‘스타킹’ 출연으로 화제. 현재 한국경제TV 주식투자프로그램 ‘대박파트너스’ 진행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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