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December 5, 2014

분노해야 할 도박, 연민해야 할 도박

앞으로 5회에 걸쳐 대중문화 속 노동과 자본 찾기를 진행한다. 무심코 스치고 지나가는 대중문화 속 숨은그림찾기를 함께 해보자. 연재순서는 다음과 같다.
1. 분노해야 할 도박, 연민해야 할 도박
2. 아직도 셜록 홈즈를 좋아하시나요?
3. 축구에 분노한 대처리즘, 축구를 사랑한 자본
4. 프랑켄슈타인과 근대 영국 노동자 계급
5. 로봇, 자본과 노동의 서로 다른 꿈
최근 몇 년 간 프로야구가 연속 최대 관중 동원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2010년 590만에 달했던 총관중수는 2011년 680만 명으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연간 가장 많은 관중을 동원하는 대중문화의 ‘종목’은 무엇이냐는 물음에 사람들은 대개 “야구”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대답에는 대중문화를 “대중매체에 의해 매개되는 문화”로만 보는 관점이 녹아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동원하는 대중적 스포츠는 통계로 본다면 바로 경마다. 한국마사회(KRA)의 발표에 따르면 경마는 1999년에 이미 연인원 1,000만 명을 넘었고, 급기야 2010년에는 연인원 2,000만 명을 돌파한 그야말로 ‘대박’ 스포츠다. 야구의 경우 한 명의 팬이 연간 평균 15~20번 정도 야구장에 간다고 가정하면, 연인원이 아닌 실제 관중 수는 20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이에 비해 일주일에 단 이틀 열리는 경마의 경우, 한 명이 연간 평균 10회 정도 경마장을 찾는다고 하면 실제 관중 수는 약 200만 명에 육박한다. 게다가 마사회가 발표한 관중 수는 과천, 부산경남, 제주에 있는 실외 경마공원의 입장객수이다. 여기에 전국 도처에 있는 장외 경마장(스크린 경마장)까지 포함하면 가히 국내 최대 인원을 동원하는 대중문화의 한 종목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경마는 마사회의 홍보에도 불구하고 사행산업, 즉 ‘도박’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에서 정부가 공인한 사행산업의 규모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발표한 <2010 사행산업백서>에 따르면 당해 연도에만 경마는 7조 5천억 원, 로또를 포함한 각종 복권은 2조 5천억 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집계되었고 전체 사행산업의 수익은 17조원을 훌쩍 넘겼다. 이렇게 엄청난 연인원이 참여하고 정부(특히 지자체) 또한 이로부터 얻는 세수가 막대함에도 도박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그런 까닭에 도박에 늘 따라 붙는 단어는 “중독”이다. 도박에의 지나친 몰입이 한 개인 뿐 아니라 가족들의 삶까지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바로 여기서 모두가 다 아는 도박의 역설이 존재한다. 중앙정부부터 지방자치단체까지 사행산업의 유치와 그 세수 확보에 열을 올리는 공인된 구조와 그로 인해 중독이라는 병리현상을 앓는 개인이라는 역설이 그것이다. 이로부터 ‘건전한 레저’로서의 경마와 도박으로서의 경마가, 명절날 가족들이 모여 치는 고스톱과 하우스에서 벌어지는 고스톱이 구분된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루 벌어 살아가는 일용직 노동자가 일주일에 꼬박꼬박 만원씩 로또를 사면 도박이고, 번듯한 대기업 직장인이 같은 액수로 로또를 사면 재미일까?
손은 눈보다 빠르다
중독과 재미를 구분하기 전에 어찌되었던 도박에는 분명 우리를 몰입시키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도박에의 몰입은 ‘대박’에 대한 기대와 기억 때문만은 아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도박에서는 내가 이전 판에서 아무리 많이 잃었다고 해도 매번 새로운 판으로 다가온다. 바로 지금의 이 판은 이전 판과 그 어떤 연관성도 갖지 않으면서 규칙과 확률은 똑같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운 판이 반복된다는 사실. 바로 여기에 도박의 매력이 있다.1
로또 1등의 당첨확률이 814만 5천분의 1이라고 해도 이 확률은 로또를 800만 게임을 넘게 하면 1등에 당첨된다는 의미로 여겨지지 않는다. 매번 로또를 살 때마다 이 확률은 동일하게 반복되며, 그렇기 때문에 지난주의 꽝은 이번 주의 당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비연관성을 갖는다.
비연관성과 반복성이라는 특징은 도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Modern Times>에 나온 유명한 장면을 떠올려 보자. 컨베이어벨트의 속도에 맞추어 정신없이 볼트를 조이던 채플린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기억나는지. 끊임없이 밀려오는 부품을 조이는 그의 손은 동일한 동작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며, 모든 부품들은 동일하기 때문에 반복되는 그의 작업과정 속에는 어떤 연관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포드주의 생산방식의 ‘탈숙련화’를 너무도 잘 보여준 이 장면은 비단 그 영화가 나왔던 1930년대의 풍경만이 아니다. 아무리 정보통신기술이 도입되고, 스마트 워크를 권장한다 해도 오늘날의 화이트칼라들의 노동, 특히 IT산업의 노동자들 또한 이러한 반복성과 비연관성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 도박의 매력이란 매력이라기보다 습관에 가깝다. 끊임없이 볼트를 조이고 키보드를 두드리던 그 손은 퇴근 후 ‘레저’의 공간에서 또 다시 패를 돌리고 슬롯머신을 당기게 된다. 이러한 육체적 반복행위 또한 도박과 노동이 공유하는 특징을 만들어 낸다. 탈숙련 노동의 중요한 특징은 시각이나 청각과는 무관한 촉각, 즉 기계적 반응을 따르는 손동작으로 행해진다.
도박 역시 마찬가지다. 카드를 받을 때나 돌릴 때, 혹은 속임수를 쓸 때조차 시각과 청각보다 촉각이 무의식에 가까운 반응을 보여야 한다.2 영화 <타짜>의 대사처럼 “손은 눈보다 빠르다.” 타짜란 바로 이렇게 사고와 판단보다 육체적 반응과 눈치를 순간적으로 결합시킬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나아가 도박과 노동은 그것을 행하는 육체적 과정에서만 동일성을 갖지는 않는다. 노동, 특히 임노동이 가치를 생산하여 그것을 화폐로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도박은 하루 노동과정에서 자신의 것으로 얻지 못한 화폐에 대한 욕망을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면서 이루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